구쓰키 모토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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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쓰키 모토쓰나 朽木元綱 | |
신상정보 | |
시대 | 센고쿠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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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덴분 18년(1549년) |
사망 | 간에이 9년 음력 8월 29일(1632년 10월 12일) |
계명 | 長久院殿福峯米徳大居士 |
막부 | 무로마치 막부 → 에도 막부 |
주군 |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 → 요시아키(義昭)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 히데요리(秀頼) →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 히데타다(秀忠) |
관위 | 종5위하, 시나노노카미, 가와치노카미 |
씨족 | 구쓰키씨 |
부모 | 아버지: 구쓰키 하루쓰나(朽木晴綱), 어머니: 아스카이 마사쓰나(飛鳥井雅綱)의 딸 |
배우자 | 정실: 교에(尭慧)의 딸 |
자녀 | 노부쓰나(宣綱), 도모쓰나(友綱), 다네쓰나(稙綱), 호리 나오마사(堀直政)의 부인 |
구쓰키 모토쓰나(일본어: 朽木元綱, 덴분 18년(1549년) ~ 간에이 9년 음력 8월 29일(1632년 10월 12일))는 센고쿠 시대로부터 에도 시대 전기에 걸친 무장, 다이묘, 요리아이 하타모토이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는 소속되었으나 다른 다이묘들의 눈치를 계속 보다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동군으로 배신하자 히데아키를 따라서 같이 배신했다.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성주에서 조선 의병장 김면의 군대를 만나 한 차례는 승리를 거두고 한 차례는 격파 당했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스에쓰구 모토야스를 따라 참전했으며, 울산왜성을 담당하였다.[1]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020년 8월 10일 확인